[니 생각 만들기]⑨ 문화 속에서 논제 찾기 - 신념과 인내가 세상의 변화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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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힘은 조바심 내지 않고 묵묵히 삶을 가꾸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학(學)아 안녕, 이제는 완연히 중학생티를 벗은 너희를 보며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을 떠올린다.
신념과 인내를 갖고 황무지에 나무를 심던 엘 자르 부피에, 지금 학교는 그렇게 나무를 심던 부피에처럼 너희를 숲으로 만들려고 한 알의 도토리를 심는 것인가 돌아본다.
지금 학교의 모습이 서로 더 많이 인정받고, 더 많이 다투고, 더 많이 얻고자 싸우던 이들의 황폐한 마을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인내로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이들이 건강하게 키워낸 나무와 숲이 있는 마을인가를 고민해본다.
학(學)아, '신념'은 무엇일까? 굳게 믿는 마음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지표에 대해 믿음을 갖고 실천하도록 밀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경험과 반성에 바탕을 둔 신념, 명예와 이익을 생각지 아니하고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순정(純正)한 신념은 있는 것일까? 선택과 결정의 순간 행동의 근거가 되는 단단한 신념은 있는 것일까?
학(學)아, <나무를 심는 사람>을 보고 난 후, 숲을 살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오랫동안, 천천히 한 알 한 알의 도토리를 심어 드디어 숲을 이루어낸 부피에로부터 너무나 멀리 와버린 우리를 생각한다.
우리는 성적이 제일 중요하다는 명제를 세워놓고 그 명제 속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친구와의 다툼을 대화로 해결하고, 공들여 집안과 교실을 청소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고, 가족과 함께 집안일을 하고, 내가 원하는 직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준비하는 것은 지금 할 수 없어 미루거나 포기한다.
심지어 스스로 공부하는 것까지 다른 이의 도움을 받는다. 성적 향상에 비해 그 모든 일은 사소한 일이라고 규정했으므로.
너희가 교실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앉아 있는 모습은 낯설다. 무엇인가를 보고, 문제를 풀고, 다투고, 잠자고, 장난치고 늘 역동적인 너희. 그래서 그 가운데 편안한 얼굴로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은 성찰보다는 멍한 상태로 읽히기 쉽다. 왜 우리는 인내와 끈기와 성찰로부터 멀어져 이렇듯 가시적(可視的)인 것에 길들었을까?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으려고 조바심을 떠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면 이것은 도정일 교수의 진단처럼 '미래의 삶에 대한 공포와 타인의 성공에 대한 선망' 때문이다.
'어떤 과를 선택해서 어떤 일을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어떤 과를 나오면 백수가 되기 십상이다'라든가 '누구는 이렇게 해서 좀 더 편하게 성공했다'더라는 얘기는 이제는 부정할 여지조차 없는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눈여겨보면 우리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밀어올리는 힘은 결코 성마르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조바심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추동(推動)하는 그 힘은 미래에 대한 가시적 예측으로 안달하지 않고 묵묵히 삶을 이뤄내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내면의 치열함을 거쳐 나온 행위만이 변화를 일으키며 그 변화는 지속성을 지닌다.
<신문보기>
1. 팔레스타인 만평가 '나지 알 알리'
나지의 만평에 나오는 캐릭터인 '한잘라'(위)는 열 살쯤. 난민촌에서 흔히 보이는 거지 아이. 나지의 11살 무렵 자화상입니다. 작가는 한잘라를 두고 "내가 엇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콘이다. 그리고 항상 뒷짐 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지역의 모든 부정적인 흐름을 거부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군에게 포위됐던 때도, 폭격 속에서 숨죽이던 때도 나는 나의 펜과 마주 대했다. 나는 결코 공포, 실패,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고 항복하지도 않았다. 카툰 속에서 군인과 맞닥뜨렸고, 꽃, 희망, 총알 등을 함께 그렸다." <나지의 회고담> (9월 7일자 한겨레신문 발췌 편집)
2. 한국의 만평가 '지현곤'
"그전에 찾아오신 분들은 제가 장애인이라서 단순히 동정심으로 대했는데, 오늘 질문은 감당이 안 되네요. 보통 사람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거나 자기의 부(富), 출세, 명예를 위해서 뭐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염세(厭世)와 어둠이 있었지요. 그 돌파구가 카툰(cartoon: 한 컷짜리 풍자만화)이 됐던 거네요. 물론 이것을 목표로 삼았던 적은 없었어요. 은연중에 물방울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그냥 물 흐르는 대로 가다 보니까, 종착역이 만화가 되지 않았나 싶거든요."
(조선일보 7월 28일자 발췌 편집)
그림1
그림2
1. 나의 펜은 당신의 칼보다 강하다.(그림1)
2. 방주에 탄 노아가 마른 땅을 확인하려고 비둘기를 날려 보낸다. 그 밑에 가라앉은 수많은 침몰선과 퇴적물들.(그림2)
<생각해볼 문제>
1. 자신이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로서 하는 구체적 활동을 적어보자.
2. 대가(代價)에 대한 인식이나 확신 없이 하는 선행과 대가(代價)를 충분히 계산하고 하는 선행의 예를 실제 삶에서 찾아 비교해보자. 어떤 차이가 있는가?
3.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전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4. 신념을 행위로 일치시킨 이의 전기를 찾아 읽어보자.
/이효재 (창원 남산고)학교 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 중등연구팀
학(學)아 안녕, 이제는 완연히 중학생티를 벗은 너희를 보며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을 떠올린다.
신념과 인내를 갖고 황무지에 나무를 심던 엘 자르 부피에, 지금 학교는 그렇게 나무를 심던 부피에처럼 너희를 숲으로 만들려고 한 알의 도토리를 심는 것인가 돌아본다.
지금 학교의 모습이 서로 더 많이 인정받고, 더 많이 다투고, 더 많이 얻고자 싸우던 이들의 황폐한 마을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인내로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이들이 건강하게 키워낸 나무와 숲이 있는 마을인가를 고민해본다.
학(學)아, '신념'은 무엇일까? 굳게 믿는 마음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지표에 대해 믿음을 갖고 실천하도록 밀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경험과 반성에 바탕을 둔 신념, 명예와 이익을 생각지 아니하고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순정(純正)한 신념은 있는 것일까? 선택과 결정의 순간 행동의 근거가 되는 단단한 신념은 있는 것일까?
학(學)아, <나무를 심는 사람>을 보고 난 후, 숲을 살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오랫동안, 천천히 한 알 한 알의 도토리를 심어 드디어 숲을 이루어낸 부피에로부터 너무나 멀리 와버린 우리를 생각한다.
우리는 성적이 제일 중요하다는 명제를 세워놓고 그 명제 속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친구와의 다툼을 대화로 해결하고, 공들여 집안과 교실을 청소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고, 가족과 함께 집안일을 하고, 내가 원하는 직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준비하는 것은 지금 할 수 없어 미루거나 포기한다.
심지어 스스로 공부하는 것까지 다른 이의 도움을 받는다. 성적 향상에 비해 그 모든 일은 사소한 일이라고 규정했으므로.
너희가 교실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앉아 있는 모습은 낯설다. 무엇인가를 보고, 문제를 풀고, 다투고, 잠자고, 장난치고 늘 역동적인 너희. 그래서 그 가운데 편안한 얼굴로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은 성찰보다는 멍한 상태로 읽히기 쉽다. 왜 우리는 인내와 끈기와 성찰로부터 멀어져 이렇듯 가시적(可視的)인 것에 길들었을까?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으려고 조바심을 떠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면 이것은 도정일 교수의 진단처럼 '미래의 삶에 대한 공포와 타인의 성공에 대한 선망' 때문이다.
'어떤 과를 선택해서 어떤 일을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어떤 과를 나오면 백수가 되기 십상이다'라든가 '누구는 이렇게 해서 좀 더 편하게 성공했다'더라는 얘기는 이제는 부정할 여지조차 없는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눈여겨보면 우리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밀어올리는 힘은 결코 성마르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조바심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추동(推動)하는 그 힘은 미래에 대한 가시적 예측으로 안달하지 않고 묵묵히 삶을 이뤄내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내면의 치열함을 거쳐 나온 행위만이 변화를 일으키며 그 변화는 지속성을 지닌다.
<신문보기>
1. 팔레스타인 만평가 '나지 알 알리'
나지의 만평에 나오는 캐릭터인 '한잘라'(위)는 열 살쯤. 난민촌에서 흔히 보이는 거지 아이. 나지의 11살 무렵 자화상입니다. 작가는 한잘라를 두고 "내가 엇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콘이다. 그리고 항상 뒷짐 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지역의 모든 부정적인 흐름을 거부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군에게 포위됐던 때도, 폭격 속에서 숨죽이던 때도 나는 나의 펜과 마주 대했다. 나는 결코 공포, 실패,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고 항복하지도 않았다. 카툰 속에서 군인과 맞닥뜨렸고, 꽃, 희망, 총알 등을 함께 그렸다." <나지의 회고담> (9월 7일자 한겨레신문 발췌 편집)
2. 한국의 만평가 '지현곤'
"그전에 찾아오신 분들은 제가 장애인이라서 단순히 동정심으로 대했는데, 오늘 질문은 감당이 안 되네요. 보통 사람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거나 자기의 부(富), 출세, 명예를 위해서 뭐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염세(厭世)와 어둠이 있었지요. 그 돌파구가 카툰(cartoon: 한 컷짜리 풍자만화)이 됐던 거네요. 물론 이것을 목표로 삼았던 적은 없었어요. 은연중에 물방울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그냥 물 흐르는 대로 가다 보니까, 종착역이 만화가 되지 않았나 싶거든요."
(조선일보 7월 28일자 발췌 편집)
그림1
그림2
1. 나의 펜은 당신의 칼보다 강하다.(그림1)
2. 방주에 탄 노아가 마른 땅을 확인하려고 비둘기를 날려 보낸다. 그 밑에 가라앉은 수많은 침몰선과 퇴적물들.(그림2)
<생각해볼 문제>
1. 자신이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로서 하는 구체적 활동을 적어보자.
2. 대가(代價)에 대한 인식이나 확신 없이 하는 선행과 대가(代價)를 충분히 계산하고 하는 선행의 예를 실제 삶에서 찾아 비교해보자. 어떤 차이가 있는가?
3.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전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4. 신념을 행위로 일치시킨 이의 전기를 찾아 읽어보자.
/이효재 (창원 남산고)학교 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 중등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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