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을 다녀와서....
페이지 정보
본문
정치적 야심으로 희생된 비운의 소년 국왕!
단종!!<?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2013년 10월 19일 토요일 경남교육포럼 문화기행 참여 회원들은 강원도 영월 청령포와 장릉을 다녀왔다.
이곳은 조선시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희생된 어린 단종의 유배지와 무덤이 있는 곳이다.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하여 9시 30분쯤 당도한 영월의 높은 하늘은 가을이 지나가는 산과 들을 맑게 비추고 있었다. 그림과 사진에서 보았던 외딴 섬 같은 청령포가 눈앞에 펼쳐졌다.
강물이 휘몰고 돌아가면서 만들어진 솔숲은 강물과 절벽으로 에워싸인 천혜의 감옥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청령포로 들어가는 길은 그 옛날 단종이 타고 갔었던 나룻배는 아니지만 엔진소리가 다소 요란한 배로 건너게 되어 있었다. 잠시 승선했던 배를 내려 단종어소가 있는 숲으로 들어가니 몇 백 년은 됐음직한 소나무 숲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안개 속에 펼쳐져 있었었다.
단종이 1457년부터 3년을 살았다는 단종어소는 영조가 내린 비석 누각과 호장 엄홍도 소나무가 전면에서 지키고 있는 형상이었다. 어소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에는 수령이 600년 된 보호수 소나무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단종이 이 나무에 올라 고향집과 가족을 그리워했다는 해설사의 안내에 모두들 애잔한 슬픔을 느끼는 듯했다.
이어서 전망대를 오르면 단종이 유일하게 남긴 흔적이라고 하는 작은 망향탑이 있다. 이 탑 아래 내려다보면 사방이 모두 절벽이고 아래는 맑은 강물이 유유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굽어 치는 이 강물은 오백년 전 어린 아이의 가슴에 몰아친 눈서리 같이 매운 슬픔도 함께 흘러 보냈으리라 짐작했다.
조선 건국 60년 만에 찾아온 계유정란과 사육신 사건은 왕권과 신권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일어난 피비린내는 정변으로 기록되어 있다. 병약한 문종을 왕위계승자로 단행한 세종은 자신이 가진 왕통의 열등감이었을까? 아니면 집현전 학자와 자신의 아들들을 너무 많이 믿었던 것일까? 만약 문종이 아니라 수양대군 세조가 바로 왕통을 이어받았다면 이런 비극은 빗겨갈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도 가져보았다.

12시쯤 영월의 토속음식인 곤드레밥을 푸짐하게 먹고, 이어서 조선 왕릉으로 유일하게 한양을 벗어난 단종왕릉인 장릉으로 향했다. 당시 금부도사 왕방연의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의 시신이 청령포를 떠돌 때삼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이 두려워 누구도 죽음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호장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다 화를 당해도달게 받겠다’라는 말을 하며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표식하나 없이 평장으로 묻어 두고 피신하였다가 훗날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과 함께 장례를 치루고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단종어소 담장에 드리운 한 그루 소나무에 붙은 이름 엄홍도! 그는 죽어서도 단종을 지키라는 후세사람들의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 영월의 청령포와 장릉 문화 해설사님은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들을 감동 속으로 몰아넣어 저녁 7시쯤 창원에 도착하였어도 그 감흥이 가시지 않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 선암마을에 들러 영월의 서강한반도지형을 구경했다.
- 이전글영월 문화여행 다녀왔습니다. 13.11.03
- 다음글강원도 영월~!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 기행 13.09.2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