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일보>경일시론-거버넌스(governance)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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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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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경일시론 2006년 12월 21일 (목)
거버넌스(governance)의 함정
박종훈 (객원논설위원·경상남도교육위원)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고 지금도 힘든 일이 면전에서 쓴 소리하기다. 의회의 기능이라는 것이 집행부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하는 일이 주된 일인데도 여전히 이 일은 어렵다. 잘하는 일에 대해 칭찬할 때도 있지만, 이것은 본래적 기능은 아니다. 하지만 쓴 소리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관계가 반복되다보면 정작 해야 할 쓴 소리를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의 일에 대해서 그 평가가 아주 상반되는 것도 어려운 일 중의 하나다. 지금도 진행형이라 할 수 있는, 필자가 관련된 일이 하나 있다. 한 지역 교육청의 혁신 과제의 수행 과정에서 내재되어 있는 문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곳에서 반발이 일어나고 여기에 대한 필자의 대응이 또다시 논란이 되면서, 할 일을 제대로 했다는 우호적 평가에서 잘못했다는 혹평까지 그 스펙트럼의 폭이 아주 넓었다.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 어려움이 물론 따르기 마련이다.
거버넌스(governance)가 이 시대의 화두다. 이 말은 제법 복잡한 의미를 가진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협치(協治)라는 말로 쉽게 설명이 되기도 한다. 이 방식은 전통적인 정부의 모형 또는 국정 운영 방식이 한계를 보이면서, 정부를 대신하여 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새로운 매커니즘으로 제기됐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 주권이 확보되고 시민은 그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것을 정부에 요구하게 되고, 하지만 산업화 시대의 정부 모형은 다양하게 분출되는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너무 집권적이고 경직적인, 이른바 정부 역할(기능)의 불일치가 새로운 지배 형태로서의 거버넌스의 배경이다. 거버넌스는 그래서 효율성과 유연성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참여 정부 들어 적지 않은 시민 단체가 정부 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시민 단체는 운동의 역동성과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되어 있지만 예산과 정책 집행력이 없고, 정부는 기왕의 통치 방식으로는 시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이들은 서로를 필요로 해서 이른바 협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시민 단체는 비판과 견제만 하던 기왕의 행태에서 벗어나 직접 정책 결정과 그 집행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정책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정부와 공유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중앙과 지방에서 새로운 유형으로서의 거버넌스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좋다. 길거리에서 행정 기관의 현관 앞에서 집회하고 농성하는 일이 주로 던 시민 단체가 행정 기관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행사장에서 시청 공무원들과 같이 나란히 앉아 시민들의 박수를 받는 모습은 참 아름답기까지 하다. 전투적이라고 표현하면 싫어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 관계의 새로운 모형인 노사정위원회를 연구했던 필자로서는, 노동과 자본과 정부가 같이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서, 삼자가 악수하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모습을 항상 그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니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비판할 사람이 없어졌다. 시민 단체가 행정 기관과 같이 하지만 모두를 같이 할 수는 없다. 이른바 협치의 영역은 한정적이다. 시민 단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영역에서 행정 기관이 잘못을 저질러도 이를 비판하고 견제할 수가 없어져버렸다. 얼굴 마주 대하며 지내다보니 쓴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교육위원인 필자는 그 정서를 잘 알 것 같다. 이를 굳이 시민 단체의 관료화, 권력화라고 내가 비판하지는 못한다.
작은 것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놓쳐서는 안 될 원칙이 있다. 시민 단체는 행정 기관과 특정 행사를 공동 주최할 수는 있어도 후원은 하지 않는다. 공동 주최를 하면 그 행사에 대해서 만큼은 책임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에 기획과 집행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참여해서 잘 하면 된다. 하지만 후원은 다르다. 후원은 참여가 배제된다. 행사에 영향력도 행사할 수는 없으면서 동시에 비판이 어렵게 된다. 후원의 족쇄가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시민 단체의 본래적 목적은 비판과 견제이지만 후원해놓고 비판하기는 쉽지가 않다. 시민 단체가 지녀야 할 정체성이 여기에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교원 단체의 활동가 출신으로서 교육 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하며, 시민 단체의 정부 기구에의 참여가 안고 있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세상에 던지는 필자의 화두다. 거버넌스가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바람직한 거버넌스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 역기능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살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거버넌스(governance)의 함정
박종훈 (객원논설위원·경상남도교육위원)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고 지금도 힘든 일이 면전에서 쓴 소리하기다. 의회의 기능이라는 것이 집행부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하는 일이 주된 일인데도 여전히 이 일은 어렵다. 잘하는 일에 대해 칭찬할 때도 있지만, 이것은 본래적 기능은 아니다. 하지만 쓴 소리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관계가 반복되다보면 정작 해야 할 쓴 소리를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의 일에 대해서 그 평가가 아주 상반되는 것도 어려운 일 중의 하나다. 지금도 진행형이라 할 수 있는, 필자가 관련된 일이 하나 있다. 한 지역 교육청의 혁신 과제의 수행 과정에서 내재되어 있는 문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곳에서 반발이 일어나고 여기에 대한 필자의 대응이 또다시 논란이 되면서, 할 일을 제대로 했다는 우호적 평가에서 잘못했다는 혹평까지 그 스펙트럼의 폭이 아주 넓었다.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 어려움이 물론 따르기 마련이다.
거버넌스(governance)가 이 시대의 화두다. 이 말은 제법 복잡한 의미를 가진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협치(協治)라는 말로 쉽게 설명이 되기도 한다. 이 방식은 전통적인 정부의 모형 또는 국정 운영 방식이 한계를 보이면서, 정부를 대신하여 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새로운 매커니즘으로 제기됐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 주권이 확보되고 시민은 그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것을 정부에 요구하게 되고, 하지만 산업화 시대의 정부 모형은 다양하게 분출되는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너무 집권적이고 경직적인, 이른바 정부 역할(기능)의 불일치가 새로운 지배 형태로서의 거버넌스의 배경이다. 거버넌스는 그래서 효율성과 유연성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참여 정부 들어 적지 않은 시민 단체가 정부 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시민 단체는 운동의 역동성과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되어 있지만 예산과 정책 집행력이 없고, 정부는 기왕의 통치 방식으로는 시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이들은 서로를 필요로 해서 이른바 협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시민 단체는 비판과 견제만 하던 기왕의 행태에서 벗어나 직접 정책 결정과 그 집행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정책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정부와 공유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중앙과 지방에서 새로운 유형으로서의 거버넌스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좋다. 길거리에서 행정 기관의 현관 앞에서 집회하고 농성하는 일이 주로 던 시민 단체가 행정 기관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행사장에서 시청 공무원들과 같이 나란히 앉아 시민들의 박수를 받는 모습은 참 아름답기까지 하다. 전투적이라고 표현하면 싫어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 관계의 새로운 모형인 노사정위원회를 연구했던 필자로서는, 노동과 자본과 정부가 같이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서, 삼자가 악수하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모습을 항상 그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니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비판할 사람이 없어졌다. 시민 단체가 행정 기관과 같이 하지만 모두를 같이 할 수는 없다. 이른바 협치의 영역은 한정적이다. 시민 단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영역에서 행정 기관이 잘못을 저질러도 이를 비판하고 견제할 수가 없어져버렸다. 얼굴 마주 대하며 지내다보니 쓴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교육위원인 필자는 그 정서를 잘 알 것 같다. 이를 굳이 시민 단체의 관료화, 권력화라고 내가 비판하지는 못한다.
작은 것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놓쳐서는 안 될 원칙이 있다. 시민 단체는 행정 기관과 특정 행사를 공동 주최할 수는 있어도 후원은 하지 않는다. 공동 주최를 하면 그 행사에 대해서 만큼은 책임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에 기획과 집행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참여해서 잘 하면 된다. 하지만 후원은 다르다. 후원은 참여가 배제된다. 행사에 영향력도 행사할 수는 없으면서 동시에 비판이 어렵게 된다. 후원의 족쇄가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시민 단체의 본래적 목적은 비판과 견제이지만 후원해놓고 비판하기는 쉽지가 않다. 시민 단체가 지녀야 할 정체성이 여기에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교원 단체의 활동가 출신으로서 교육 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하며, 시민 단체의 정부 기구에의 참여가 안고 있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세상에 던지는 필자의 화두다. 거버넌스가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바람직한 거버넌스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 역기능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살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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